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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 둘째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절주에 관한

관리자 2006년 06월 26일 10:10 조회 3470

 

다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2


유아(游兒)에게 부침


네 형이 멀리서 왔으니 반갑기는 하다만 며칠간 함께 이야기해 보니, 옛날에 가르쳐 준 경학(經學)의 이론을 하나도 대답하지 뭇하고 좌우만 돌아보며 두리번거리더구나. 아! 이는 무슨 까닭이냐? 아마도 어린 나이에 화를 만나 혈기가 상하여 정신을 바로 밝히지 않아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때때로 점검해서 안으로 수습하였던들 어찌 이 지경에까지야 이르렀겠느냐? 한심스럽고 한심스럽다. 네 형이 이와 같을진대 너도 어떠한지를 알겠다. 네 형은 문사(文史)에 대하여 다소나마 취미를 알고 있는데도 이와 같은데, 전혀 손도 대지 않은 너야 오죽하겠느냐.


가령 내가 집에 있으면서 너희들을 가르쳤는데도 너희들이 따르지 않은 것이라면 사람의 집안에 혹 있을 수 있는 일이거니와, 지금 나는 귀양을 와서 남쪽의 먼 변방, 장려(獐癘)가 가득한 곳에 몸을 붙이고 외롭게 지내면서 밤낮으로 너희들에게 기대를 걸고 때때로 마음의 열혈(熱血)을 적어서 부쳐 주곤 하였는데, 너희들은 한번 보고는 상자 속에 던져 버리고 마음에 두지 않으니, 이래서야 되겠느냐.


네가 닭을 기른다는 말을 들었는데, 닭을 기르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중에도 품위 있고 저속하며 깨끗하고 더러운 등의 차이가 있다. 진실로 농서(農書)를 잘 읽어서 그 좋은 방법을 선택하여 시험해 보되, 색깔과 종류로 구별해 보기도 하고, 홰를 다르게도 만들어 사양(飼養) 관리를 특별히 해서 남의 집 닭보다 더 살찌고 더 번식하게 하며, 또 간혹 시를 지어서 닭의 정경을 읊어 사물로써 사물을 보낼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독서한 사람이 닭을 기르는 법이다. 만약 이익만 보고 의리를 알지 못하며 기를 줄만 알고 취미는 모르는 채 부지런히 힘쓰고 골몰하면서 이웃의 채소를 가꾸는 사람들과 아침저녁으로 다투기나 한다면, 이는 바로 서너 집 모여 사는 시골의 졸렬한 사람이나 하는 양계법이다. 너는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이미 양계를 하고 있다니 아무쪼록 백가(百家)의 서적에서 양계에 관한 이론을 뽑아 계경(鷄經)을 만들어서 육우(陸羽)의 『다경(茶經)』과 유혜풍(柳惠風)의 『연경(煙經)』과 같이 한다면, 이 또한 하나의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세속적인 일에서 밝은 운치를 간직하는 것은, 항상 이런 방법으로 예를 삼도록 하여라.


네가 열 살 전에는 몸이 약해서 병을 많이 앓았었는데, 근래에 들으니 힘줄과 뼈마디가 굳세고 씩씩하며 심력(心力)도 있어서 거친 밥도 잘 먹고 괴로움도 견딜 줄 안다니 제일 반가운 일이다. 무릇 남자가 독서하고 행실을 닦으며 집안을 다스리고 일을 하는 모든 행동에 있어서 심력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심력이 있음으로 해서 부지런하고 민첩해질 수 있으며 지혜로워질 수 있으며 공업(功業)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마음을 견고하게 세워 한결같이 앞으로 향하여 나간다면 비록 태산이라도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대략 알게 되었다. 책을 그냥 읽기만 하면 하루에 천백 번을 읽어도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릇 책을 읽을 때에는 한 글자를 볼 때마다 그 명의(名義)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곳이 있으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자세히 연구해서 그 근본을 터득하고 따라서 그 글의 전체를 완전히 알 수 있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을 계속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종류의 책을 읽을 때에 아울러서 수백 가지의 책을 널리 상고하게 될 것이요, 따라서 본서(本書)의 의리에 대해서 분명히 꿰뚫을 수 있으니, 이 점을 몰라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사기』의 자객 열전(刺客列傳)을 읽다가 ‘조도제(祖道祭)를 지내고 길을 떠났다(旣祖就道).’라는 한 구절을 만나게 되었을 경우 ‘조(祖)란 무엇입니까?’ 하고 스승에게 물어보아라. 그러면 스승은 ‘전별제(餞別祭)이다.’라고 대답해 줄 것이다. 또 ‘꼭 조라고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어서 스승이 ‘자세히 모르겠다.’라고 하거든, 집으로 돌아와서 자서(字書)를 꺼내 조(祖) 자의 본뜻을 살펴보고, 또 자서에 있는 증거를 토대로 하여 다른 책까지 들추어 그 전석(箋釋)을 고찰해서 그 뿌리를 캐고 지엽적인 뜻까지도 캐도록 하여라. 또 『통전(通典)』이나 『통지(通志)』․『통고(通考)』 같은 서적에서 조제(祖祭)하는 예절까지 상고해서 책을 만들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을 좋은 책이 뒬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네가 그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환하게 아는 사람이 될 것이니 아무리 큰 학자라 할지라도 조제에 관한 한 가지 일에 있어서는 너와 겨룰 수 없을 것이다. 어찌 크게 즐겁지 않겠느냐?


주자의 격물(格物) 공부도 이와 같은 것이다. 오늘 한 가지 사물에 대해 끝까지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에 대하여 끝까지 궁구한다는 것도 이와 같이 착수하는 것이다. 격(格)이라는 것은 끝까지 연구하여 끝까지 도달한다는 뜻이니, 끝까지 연구해서 끝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이다.


『고려사』를 빨리 보내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중에서 가려 뽑는 방법을 너희 형에게 자세히 가르쳐 주었으니, 이번 여름에 부디 너희 형제들이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힘을 쏟아서 이 일을 끝내도록 하여라. 무릇 초서(鈔書)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자기의 뜻을 정해서 만들 책의 규모와 절목을 새운 뒤에 뽑아야만 일관된 묘미가 있는 법이다. 만약 세워 놓은 규모와 절목 이외에 뽑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모름지기 책 하나를 따로 갖추어 놓고 얻는 대로 기록하여야 득력(得力)한 곳이 있게 된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쳐 놓았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느냐.


너의 형이 왔기에 시험 삼아 술을 마시게 했더니, 한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더구나. 그래서 동생인 너의 주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네 형보다 배도 넘는다고 하더구나. 어찌하여 글공부에는 이 애비의 성벽(性癖)을 계승하지 않고 술만은 이 애비를 넘느냐. 이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너의 외조부이신 절도사공(節度使公)께서는 술 일곱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으셨지만, 평생 동안 술을 입에 가까이하지 않으셨다. 노년(老年)에 이르러서 작은 술잔 하나를 만들어 입술만 적셨을 뿐이었다.


나는 태어난 이래 아직까지 크게 술을 마셔 본 적이 없어, 나 자신의 주량을 알지 못한다. 포의로 있을 매에 중희당(重熙堂)에서 삼중소주(三重燒酒)를 옥필통(玉筆筒)에 가득히 부어서 하사하시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마시면서 ‘나는 오늘 죽었구나.’라고 마음속에 혼자 생각했었는데, 몹시 취하지 않았었다. 또 춘당대(春塘臺)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고권(考卷)할 때에 맛있는 술을 큰 사발로 한 그릇 하사 받았는데, 그때 여러 학사들은 크게 취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남쪽으로 향하여 절을 올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연석(筵席)에 엎어지고 누워 있고 하였지만, 나는 시권(試卷)을 다 읽고 착오 없이 과차(科次)도 정하고 물러날 때에야 약간 취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너희들은 내가 술을 반 잔 이상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는 것이다. 소가 물을 마시듯 마시는 저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는 적시지도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다. 저 얼굴빛이 주귀(朱鬼)와 같고 구토를 해 대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자들이야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대부분 폭사하게 된다. 술독이 오장 육부에 스며들어 하루아침에 썩기 시작하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것이 크게 두려워할 만한 점이다.


무릇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하는 흉패(凶悖)한 행동은 모두 술로 말미암아 비롯된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고(觚)라는 술잔을 만들어 절제하였다. 후세에서는 그 고라는 술잔을 사용하면서도 능히 절제하지 않으므로 공자(孔子)는 ‘고라는 술잔을 사용하면서도 주량을 조절하지 못한다면 고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너처럼 배우지 못하고 식견이 좁은 폐족의 한 사람으로서 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이 더 붙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느냐? 경계하여 절대로 입에 가까이하지 말아서, 제발 천애 일각(天涯一角)에 있는 이 애처로운 애비의 말을 따르도록 하여라. 술로 인한 병은 등창이 되기도 하며, 뇌저(腦疽)․치루(痔漏)․황달(黃疸) 등 별별스런 기괴한 병이 있는데, 이러한 병이 일어나게 되면 백약이 효험이 없게 된다. 너에게 빌고 비노니, 술을 입에서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하여라.


네가 아직도 『사기』를 읽고 있다 하니, 이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옛날 고정림(顧亭林)은 『사기』를 읽을 때에 본기나 열전에 있어서는 마치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것과 같았고, 연표(年表)나 월표(月表)에 있어서는 손때가 묻었으니, 이것이 제대로 읽는 방법이다. 『기년아람(紀年兒覽)』에 실려 있는 큰 사건의 기록이나, 역대의 연표 같은 것은 반드시 그 범례를 자세히 읽을 것이며 『국조보감(國朝寶鑑)』에서 뽑아 연표나 혹은 큰 사건의 기록을 만들고, 또 『압해가승(押海家乘)』에서 뽑아 연표를 만들어서 중국 연호와 우리 나라 열조(列朝)의 임금들이 재위(在位)한 연수를 자세히 고찰하여 책을 만들면 나라의 일과 선조(先祖)의 일에 대하여 큰 줄거리를 알고 시대의 선후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선고(先考)께서 나에게 보내 주신 편지가 아직도 상자 속에 보관되어 있느냐? 없어질까 걱정이다. 그중에서 자잘한 일상생활에 관한 것은 모두 삭제하고, 훈계와 기억될 만한 말씀들을 모아서 그 연월을 맞추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야 하겠다. 내가 여기에 있으므로 몸소 기록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사기』를 다 읽거든 반드시 『예기』를 읽도록 하여라. 『예기』 49편은 모두 다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궁(檀弓)․문왕세자(文王世子)․예기(禮器)․내칙(內則)․명 당위(明堂位)․대전(大傳)․학기(學記)․악기(樂記>)․제법(祭法)․제의(祭義)․애공문(哀公問)으로부터 방기(坊記)․표기(表記)․치의(緇衣)․문상(問喪)․삼년문(三年問)․유행(儒行)․관의(冠儀) 이하 7편까지는 모두 읽을 만하다. 이것을 모두 읽고서는 다시 곡례(曲禮) 등 읽지 않은 것을 모아서 그 의리를 자세히 연구하고, 그 명물(名物)을 자세히 분석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마쳤으면 다시 시작해서 자세히 이해하고 앞뒤를 꿰뚫는다면 『예기』 한 책에 대해서 유감이 없게 될 것이다.